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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노트

핀테크 창업 경험 중

@3/21/2024
"요즘엔 워낙 사고가 많아서 투자, 금융 관련 단어 뿐 아니라 관련 기사만 나도 계약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 틈틈히 만들던 웹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 결제 대행사에 계약 신청을 하면 다음날 전화로 들려오는 말이다. 2023년 목표는 “웹 서비스 만들어서 창업하기”였다. AI가 끝없이 부상하는 요즘, AI가 금 채굴기라면 데이터는 금광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금융 데이터 말이다. 다음 단어를 예측해 글을 생성하는 ChatGPT, 다음 장면을 예측해 영상을 생성하는 Sora 등 수많은 소식이 쏟아져 들려오지만 다음날 주식 시장을 예측해주는 AI 모델이 나타나 화제가 된적은 한번도 없었다. AI가 정확도 99%를 자랑하며 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요즘, 높은 정확도를 가진 투자 AI가 나타나 금융 시장을 뒤흔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금융 데이터 예측 모델에 흥미가 생겨 책과 온라인 강의를 찾아보고 퀀트 서비스 회사 CTO가 진행하는 2달 가량의 오프라인 강의도 수강했다. 결과적으로 알게된 사실은 시계열 예측은 일반 추론에 비해 훨씬 어렵다는 것과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변량 데이터가 필수라는 사실이다. 다변량 데이터라는 키워드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흔히 주가 예측에 사용되는 볼린저밴드, 이동평균선 등 기술 지표는 주가 그 자체에서 나온 파생 정보다. 마치 여러 각도로 거울을 놓고 내 미래를 점치는 모양세 아닌가? 나와 같은 성별, 나이, 국적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보면 내 미래를 논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체를 여러 각도로 본다 한들 나 이상의 정보가 나올 리 만무하다.
“전 세계 금융 데이터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웹 서비스를 만들자”
AI 모델 개발이 아니었다. 그저 다양한 금융 시계열을 비교해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A기업의 매출이 줄어들면 A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B기업의 매출도 줄어든다는 인과 관계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다변량 시계열 분석”을 제공하는 웹 서비스를 찾아다녔지만 내가 생각한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처음이라는 생각에 들뜬것도 잠시, 기획과 디자인에 참고할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많은 난관을 직접 해결해야만 했다.
혼자 기획, 디자인, 개발을 반복하며 1년이 자나니 쓸만한 제품이 완성되었다. 금융 데이터 판매 업체를 뒤진 끝에 프랑스의 한 스타트업과 계약을 했고 적정 소비자 가격 산정, 해외 기업과 메일 소통, 이용 약관과 개인정보 처리 방침 작성 등 모든 과정을 몸소 겪었다. 개발 단계에서 선정한 PG사인 T사의 API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T사에 전자결제 계약을 신청했다. 이제 이 계약만 완료되면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계약에 필요한 문서와 요구사항을 안내받고 1주일에 걸쳐 모든 문서와 요구사항을 준비해 전달했다. 다음날 메일함을 열어보니 네 문장의 거절 내용이 담겨있었다. 주식정보 제공 서비스로 확인되어 내부 규정에 따라 결제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침착하게 국내 카드사들의 심사 기준을 찾아보니 투자 정보와 관련된 사업은 매우 기피되고 있었고 대부분의 PG사도 웹 사이트에 “금융”이라는 키워드가 있다는 것만으로 계약을 거절하는 판국이었다. 정말 모든걸 쏟아부어 만들었는데 시장에 내놓지 못한다는 생각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마음을 추스리고 국내 모든 PG사에 연락을 해보는 동시에 웹 사이트에서 사용되는 모든 용어와 표현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그저 데이터의 시각화와 계산 기능을 제공할 뿐 어떠한 투자 자문 혹은 종목 추천도 없다고 소리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웹 사이트의 단어 하나, 표현 하나로 인해 거절당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주식 관련 스팸 문자와 악성 광고, 주식 리딩방 등 투자 수익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업자가 판치는 세상인건 알고 있다. 그런 사업자들이 크고 작은 사고를 만들고 손해를 끼쳐서 카드사가 방어적으로 된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느낌은 단순한 편견과 차별이다. 우선 손이 닿는 데까지 모든 걸 시도할 생각이지만 서러운 마음이 쌓여서 이렇게 글로 풀어봤다.